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애틀 슈퍼소닉스 (문단 편집) === 몰락과 해체 === 1997년에 켐프가 자신의 입지 하락과 연봉 문제[* 영입한 백인 센터 짐 매킬베인에게 많은 연봉을 안겨준 게 문제였다. 그리고 영입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도 못했다.]에 불만을 품자 팀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밀워키 벅스와 3각 트레이드를 벌여 그를 클블로 팔았고, 대신 밀워키 벅스로부터 빈 베이커를 샀으나 자기관리 문제 등으로 제 역할을 못했다. 1998-99 시즌을 앞두고 [[조지 칼]] 감독이 밀워키 벅스로 떠나자 전 피닉스 선즈 감독 폴 웨스트팔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매킬베인을 뉴저지 네츠로, 샘 퍼킨스를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각각 보내고 새크라멘토 킹스로부터 올든 팔러니스를 사는 등 조금 변화를 줬지만 25승 25패로 5할만 찍고 아쉽게 플옵은 못 갔다. 이후 팀은 플옵권 언저리를 맴돌며 [[유타 재즈]]의 도약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시대를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했다. 2001년에 배리 액클리 구단주가 [[스타벅스]] 회장 하워드 슐츠에게 구단을 넘겼고, 2003년에 노쇠화된 페이튼을 [[밀워키 벅스]]의 레이 앨런과 맞바꿨다. 2004-05 시즌에 [[레이 앨런]]과 랴샤드 루이스의 'R-R포'와 오펜리바&몸빵형 골밑라인으로 중무장해 정규시즌에서 52승을 거두며 지구 우승을 차지하다가 플옵에서 [[팀 던컨]]이 활약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하면서 마지막 불꽃이 꺼졌고, 시즌 후 [[네이트 맥밀란]] 감독이 옆동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떠나면서 내리 플옵 진출에 실패했다. 더 나아가 현지에서 인기마저 쭉쭉 내려갔으며 드래프트에서 2004~2006년까지 센터만 1라운드에서 줄줄이 뽑는 모습을 보였다. 2007년에 루이스와 앨런이 올랜도 매직과 보스턴 셀틱스로 각각 떠나자, 감독을 밥 힐 대신 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P.J. 칼리시모로 갈고 드래프트에서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출신 케빈 듀란트를 2번으로 뽑아서 팀 재건을 하려 했다.[* 1번픽은 포틀랜드가 가져갔고 [[그렉 오든]]을 지명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러나 칼리시모 감독의 선수 장악력이 안 좋고[* 골든스테이트 감독 당시 [[라트렐 스프리웰]]과 문제가 있었다.] SG 자리가 빈 데다, 데미안 윌킨스 외엔 실력으로 건질 만한 선수가 없어 정규시즌을 20승 62패로 마쳤다. 그 사이 슐츠 구단주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키 아레나 보수를 요구했으나 시 당국은 이를 거절했고, 2006년에 팀을 오클라호마시티 출신 사업가 클라이 베넷에게 넘겼다. 베넷 구단주도 시 당국에 키 아레나 보수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연고 이전'을 선언했고, 구장 임대 계약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조기 이전을 위해 팀의 로고, 뱃지, 트로피를 비롯한 권리를 모두 시애틀 당국에 이전시키며 자신의 사업기반이자 NBA팀 유치에 적극적이던 [[오클라호마 시티]]로 [[연고지 이전|연고 이전]]을 단행하게 되면서 팀의 역사는 사실상 단절되었다. [[파일:KD와 웨스트브룩.jpg]] 참고로 [[케빈 듀란트]]와 [[러셀 웨스트브룩]]은 슈퍼소닉스가 드래프트에서 선발한 선수들인데 듀란트는 2007년 드래프트에 선발되어 루키 시즌을 시애틀에서 보냈고, 웨스트브룩은 2008년 드래프트에 선발되어 드래프트 당시 소닉스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했다. 이들은 구단의 연고이전 이후 오클라호마 시티 소속으로 정규리그 MVP에 오르며 최고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시애틀 농구팬들은 아직도 '''"오클라호마가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을 훔쳐갔다"'''면서 분노하고 있다. --있을때 잘하지 그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